정말이다. 나는 오늘까지 3일 연속 내기에 졌다. 점심 식사 후 항상 커피 내기를 한다.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아니, 생각할수록 기분이 무척 좋지 않다. 자꾸 돈을 써서 억울한 것이 아니다. 성인이라면 결과에 승복할 줄 알아야한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18,900원.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에 발달한 커피 문화가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아니 언제부터 우리 민족이 커피를 그렇게 마셨는가말이다. 커피콩 한 알 나오지 않는 국가에서 온 국민이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 것은 몹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18,900원.
<증빙 이미지>
아마 안창우 매니저가 '정보람찬 매니저님, 오늘 저는 사무실에 들어가 녹차를 우려 마시겠습니다.'라고 한마디 했다면 내가 나서서 그린티라떼를 사줬을 것이다. 그것도 벤티 사이즈로. 하지만 그는 오늘 콜드브루를 마셨다. 1분에 한 방울 떨어지는 그 콜드브루 말이다. 얄밉다. 씁쓸하게 18,900원을 결제하고 지갑을 닫으며 곰곰이 생각했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을까?
우린...처음부터 그랬다!
처음 입사했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 만난 사람들, 낯선 환경이 날 몹시 어색하게 만들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마치고 대표님은 한마디 했다.
"안내면 진거...가위바위보"
귀를 의심했다. 안내면 진거, 가위바위보라니. 간단한 인사가 끝나면 내 자리와 컴퓨터 세팅, 그동안 진행한 회사 프로젝트를 보면서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가! 일단 안내면 진다고 해서 엉겹결에 주먹(아마도)을 냈다.
그날 정확히 기억 나지 않았지만 내기에서 진 누군가가 과자와 음료수를 사왔고, 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첫 날을 보냈다.
무슨 내기를 하는가?
우리 회사가 내기를 즐겨한다지만 도박에 눈 먼 중독자들은 아니다. 주로 이기든 지든 가볍게 웃을 수 있는 내기에 한정한다. 18,900원
1) 점심 메뉴 고르기
누구나 점심은 소중하다. 직장인에게 점심은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점심은 오전 근무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오후 시간도 힘을 내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누구나 점심에 먹고 싶은 메뉴가 다르다. 의견을 모으기 쉽지 않다. 사실 각자 먹고 싶은 메뉴를 먹으면 그만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굳이 점심 메뉴를 내기를 통해 정한다. 방식은 다음과 같다.
① 11시 50분 각자 원하는 메뉴를 정한다.
② 가위바위보로 선을 뽑는다.
③ 선이 내기 게임의 룰을 정한다.
④ 희비가 엇갈린다.
⑤ 결과에 절대 이의를 제기 하지 않는다.
*냉면을 너무 먹고 싶어서 5일 동안 같은 메뉴를 밀었다.
<응, 너야>
2) 식사 후 커피 내기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 사례는 브랜코스에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이제 점심을 마치면 으레 커피를 마시고 싶다. 커피를 딱히 마시고 싶진 않은데 커피를 마시고 싶은 기분이 든다. 내기 방식은 점심 메뉴를 고를 때와 기본적으로 같다. 다만, 내기의 종류가 훨씬 풍성하다.
① 일반적 내기 종목_주사위, 제비뽑기
② 기억에 남는 내기 종목_이쑤시개 씨름, 홀아비 가위바위보
③ 최근 트렌드_실시간 검색어 단어 맞추기
3) 다과회
점심과 퇴근 사이, 뭔가 속이 허할 때가 있다. 혹은 그냥 직원들끼리 한껏 수다를 떨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럼 누군가가 일어나 한 마디 한다.(단, 월말 성과 보고일 금지) 음료수나 과자 드실 분!
사회적 통념에 비추어 보아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이 다과를 제공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왜냐면 내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비정기적인 이벤트인 만큼 때에 따라 내기가 커질 때가 있다. 아니 주객이 전도되어 게임 자체에 집중하게 될 때가 있다. 각자 의견을 내고 내기를 결정한다. 기억에 남는 내기는 팀별 스피드 퀴즈, 몸으로 말해요, 보드게임, 공기 등이 있다.
<으아므니!!!!!!->아, 어머니>
Q. 내기를 왜 하는가?
브랜코스 임직원을 지켜본 결과 특별히 일과 후 도박을 하거나 상습적으로 내기 자체를 즐기는, 즉 갬블러 성향을 가진 이는 없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다음 질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내기를 왜 하는 것인가?
첫째는 일상에 활력을 준다. 브랜코스 구성원이 내기에 기꺼이 동참하는 가장 큰 이유는 평범한 일상에서 게임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 생각한다. 앞서 밝힌 점심시간 내기가 그렇다. 오전 근무로 잠시 가라앉은 마음에 좋은 자극을 준다. 물론 커피 내기에 걸려 지출을 해야 하는 사람은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공리주의자다. 한 명의 희생으로 모두가 즐거울 수 있다면 옳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둘째, 심리적 스킨십. 따로 먹을 수 있는 식사 시간, 우리는 굳이 함께 식사를 한다. 그리고 이 후 간단한 커피 타임까지 대화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은 매일 점심시간마다 차곡 차곡 쌓인다. 이 시간들은 무시할 수 없는 화학작용을 일으킨다. 매일 희비가 교차하며 위로를 하고, 즐거워하고 과정에서 심리적인 스킨십을 쌓는다. 한 손에 커피 하나씩을 들고 웃으며 각자 자리에 앉는다. 웃으며 오후 일과를 시작한다.
셋째, 운 앞에선 누구나 평등하다. 최근에 깨달았지만 내기를 통한 의사결정(물론 업무 외적인 것)은 수평적 회사 분위기를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사실을 느꼈다. 어디까지나 개인 의견이다. 내기를 하는 순간 만큼은 대표님도, 나도, 얼마전에 들어온 매니저님도 모두 동등하다. 결과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어떠한 권력관계가 작용하지 않는 평등한 순간을 점심 시간 동안 구현하고 있다.
업무에 있어서 상하관계가 있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 평등하다는 것, 그건 회사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고 기꺼이 받아줄 수 있는 사내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내기'가 브랜코스의 정체성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기를 통한 분위기 환기, 즐거움, 유대 관계를 쌓는 일은 계속 될 것이라 감히 예측한다. 작은 바램은 이 소소하지만 꾸준히 쌓은 에너지가 고객사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소비자들이 느낄 수 있길 바란다. 브랜코스 사내 내기 문화, 이대로 괜찮은 것 같다.
by 마케터 정보람찬
boramchan@brancos.co.kr
- 브랜드 마케팅 스튜디오, 브랜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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