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사회초년생이었다. 굶어 죽기에 알맞다는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전공을 살릴 수 있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그냥 없었다. 자소서, 이력서를 쓰며 지내던 중 지인의 소개로 한 회사에 입사했다. 입사한 회사는 과일 유통회사로 유명 프렌차이즈 베이커리 기업에 과일을 납품하면서 성장한 회사였다.
베이커리 전문 과일 납품 분야에서 입지가 튼튼한 이 회사는 입사 당시 과도기에 놓여 있었다. 납품 전문, 하청 회사에서 벗어나 자체 브랜드를 만들고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자금 흐름은 납품으로 얻은 이익을 브랜드 육성에 쏟고 있었다.
그래서 왜 이 이야기를 하는데?
유통시장에서 오랜 경험과 노하우로 기업을 성장시킨 당시 대표님은 지금 아닌 미래 비전을 직원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렇게 뛰어난 사람도 브랜드 성장에 있어서는 놀랄 만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의견을 들어야 할 때는 고집을 지켰다. 고집을 지켜야 하는 순간엔 쉽게 타협했다. 나는 대표님께서 기업인으로서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래 소개할 성공 스토리는 타인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성공한 사업가가 '왜' 자신의 브랜드 육성엔 유독 고전을 면치 못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 회사의 이야기는 어찌보면 특별하지 않다. 대한민국 중소기업의, 사업주의 보편적인 이야기다.
대표의 역량_맨주먹에서 사장까지
그 분은 젊어서 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 출신으로 재산을 물려받아 사업은 시작한 사람이 아니었다. 트럭을 몰고 과일도 팔아보고, 식당을 열어 대박도 쳤다. 그러던 20여 년 전, 과일 유통에 관심을 가졌고 일본으로 과일을 수출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의 규모를 키웠다. 이후 과일 디저트 선진국인 일본을 왕래하며 자신의 회사를 단순히 과일 수출·유통 회사가 아닌 과일 전문 회사로 만들고자 했다.
한 번 결심한 일은 꼭 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 추진력이 지금의 회사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위기에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대응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회사에 몸담고 있을 때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일반인과 다른 의지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 끗 차이의 생각
딸기는 맛있다. 고운 빨간색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사람이 딸기를 좋아한다. 좋은 딸기는 선명한 붉은 색을 가지고 있고 분홍색으로 과육이 짓무른 자국이 없어야 한다. 크기가 크면 클수록 단맛이 강하다. 맛있는 딸기를 고르는 기본 상식이다. 하지만 크기가 큰 딸기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케이크에 올리면 크림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뭉개진다.
모든 상품이 그렇듯 불량으로 간주한 딸기(모양이 작아 시장성이 없는 딸기)는 그대로 버려졌다. 이렇게 버려지는 작은 딸기를 어떻게 가치 있는 상품으로 만들지 고민했다. 작은 딸기는 장점이 있었다. 작고 모양이 예쁘다는 것. 작은 딸기가 오히려 케이크에 사용하기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샘플을 만들어 프렌차이즈 베이커리 회사들과 미팅을 가졌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버려지는 물건의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어 '데코레이션용 딸기'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그때부터 전국에 있는 프렌차이즈 베이커리의 모든 케이크엔 데코레이션용 딸기가 사용되었다.
승승장구, 성장
데코레이션 용 딸기 외에도 딸기의 가치는 높았다. 딸기는 예민한 과일이다. 한 번 사람이 손으로 만지면 손가락 모양으로 짓무른다. 짓무른 딸기는 시장성이 없어 떨이로 판매된다. 그 때 이 떨이로 나온 딸기를 '갈아버릴' 생각을 했다. '주스용 딸기' 시장을 새로 개척했다. 주스로 만들 딸기는 모양이 중요하지 않다. 맛만 좋으면 된다.
여기서 잠깐 질문. 딸기는 겨울 과일이다. 여름에 먹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름에도 우리나라에선 딸기가 출하된다. 다만 시장에서는 거의 볼 수 없다. 여름에 출하된 딸기는 거의 모든 물량이 일본으로 수출된다. 이 강원도 여름딸기 농가들과 여름 딸기 납품 계약을 따냈다. 일년 내내 딸기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밖에도 데코에 사용할 블루베리, 청포도 등, 영역을 넓히며 회사는 급성장했다.
'치킨 게임'을 마주하다.
시장을 개척하면 언제나 그렇듯 후발 업체들이 따라온다. 프렌차이즈 기업은 아쉬울 게 없다. 누가 오리지널이고, 누가 아이디어를 모방했는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품질은 정해진 기준만 통과하면 OK. 어떤 업체가 더 낮은 가격으로 납품할 수 있는지만 정하면 된다.
기업이 가진 핵심 기술이 아닌, 원물 가격에 의해서만 가치가 평가되는 상황에선 후발주자의 추격을 따돌리기 쉽지 않다. '데코레이션 용 딸기' '주스용 딸기' '여름 딸기' '블루베리' '청포도' 등 새로운 아이템으로 후발 주자와의 경쟁에서 한발씩 앞서나갔던 회사도 이젠 후발 업체들과 가격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단가 인하는 매년, 반기에 한번씩 진행된다. 갑의 위치에 있는 대기업은 매년 단가를 낮출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한다. 이익은 갈수록 떨어진다.
지금까지 회사의 성장 동력이었던 아이템의 끝은 보인다. 대기업, 하나의 채널에만 의존하는 회사는 자생력을 갖추기 힘들다. 이익도 갈수록 떨어진다. 대표님은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 우리 회사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내 브랜드가 있어야겠다."
프리미엄 과일 브랜드 론칭
이 회사가 구상한 과일 브랜드는 '프리미엄 과일 브랜드'다. 잘 생각해보자. 우리나라에 과일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는가? 과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고창 수박이나 논산 딸기, 상주 참외 등을 예로 들 것이다. 지자체에서 해당 과일을 홍보하기 위해 산지를 브랜드화 한 것에 그쳤을 뿐, 과일 전체에 대한 브랜드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ex. 델몬트, 썬키스트)
의도는 좋았다. '실패가 없는 선택' '맛있는 과일을 파는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각인시키고 싶었다. 직접 전국을 뛰어다니며 이름난 과일 명인들을 만났다. 이마트 '국산의 힘'이라는 프로젝트를 알고 있는가? 농수산물이 아닌 재배하는 농부, 어부를 전면에 내세운 마케팅은 이마트 기업 이미지 재고와 상품의 신뢰성 증대, 판매 증진까지 이뤄낸 훌륭한 마케팅 사례로 손꼽힌다. 이 브랜드는 이마트 국산의 힘 프로젝트보다 약 5년 전, 과일 자체가 아닌 과일 재배 농가의 스토리를 풀어내는 마케팅을 시작했다.
성공 스토리는 여기까지다. 다음 편에서는 시장을 선점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지 못했는지 생각을 정리해보겠다.
by 마케터 정보람찬
boramchan@brancos.co.kr
브랜드 마케팅 스튜디오, 브랜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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