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온전히 나를 위해 주어지는 시간. "
꼭 모든 사람과 다 같이 점심을 먹어야 하는 걸까? 나는 전에 회사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 점심시간이었다. 새로운 상무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친한 팀원들 끼리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회사 메신저로 점심으로 뭘 먹을까? 고민하며 항상 기분 좋은 식사를 했다. 날이 좋은 날엔 근처 카페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사서 벤치에 앉아서 식사하기도 했고, 회사가 청담동이라 맛집이 많아서 대리님 차를 타고 근방으로 나가서 맛집 투어를 다니곤 했다.
그런데, 새로운 상무님이 오시면서 부터 같은 팀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다 같이 식사해야 되고 항상 상무님이 드시고 싶은 게 그날의 점심 메뉴가 됐다.
나는 음식을 천천히 오래 씹으며 음미하며 먹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상무님과 먹을 때는 흡사 군대와 다름 없었다. 식사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거의 씹지 않고 삼키시는 것 같았다. 상무님의 식사 페이스를 맞추느라 체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눈치가 보여서 밥을 남긴 적도 많다. 나는 점심시간이 불편해졌다. 싫어졌다.
그 때부터였다. 내 거짓말이 시작된 게. 상무님과 식사하기가 싫어서 "저 오늘 약속이 있어서... 식사 맛있게 하세요!", "업무가 많아서 안에서 먹겠습니다." 이런 사소한 거짓말들을 계속하게 됐다. 매번 거짓말을 했던 건 아니지만 번번이 상무님과 같은 팀 사람들이 나가면 점심 메이트들과 반대쪽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거나, 아침에 미리 사 와서 점심시간에 휴게실에서 먹곤 했다. 지하실 창고에 들어가서 밥을 먹지 않고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매달 회사에서 지정된 식비가 있었는데 하루에 만원, 월급날 현금으로 항상 식비를 같이 주셨다. 각자 개인적으로 보내는 점심시간을 윗분들은 탐탁지 않아 하셨다. 한번은 여상무님 방에 불려가서 한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시아야 점심시간이 어떤 시간인 거 같니?"
"점심시간은 업무의 연장이야."
"너네들 그렇게 계속 개인 플레이하면 식비를 주기가 그렇다'
내 점심 메이트 동갑내기 친구는 아침마다 엄마가 밥을 차려주셔서 항상 아침밥을 든든히 먹고 출근을 했다. 우리랑 따로 밖에서 먹을 때에도 친구는 거의 식사를 시키지 않거나 가볍게 사이드 메뉴를 먹었다. 친구는 점심을 먹기보다 우리랑 수다를 떨면서 시간 보내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팀원들과 점심시간을 보낼때는 식사를 안 하겠다고하는 게 눈치보여서 억지로 꾸역꾸역 먹다 보니 자주 더부룩하다고 말하곤 했다. 친구가 체해서 급하게 편의점에 가서 소화제를 사먹는걸 보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굴 위한 단합일까? 점심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인데 왜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을 가질 즈음에 퇴사를 하게 됐다. 물론 점심시간 때문에 퇴사를 한 게 아니라, 업무적인 면이 안 맞아서 퇴사를 했다. 나만 이런 의문점을 갖는건 아니라고 본다.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봐도 누구나 한번씩 다 생각해보는 문제이다.
회사 사람들끼리 같이 밥을 먹으면서 결속을 다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 9시부터 6시 총 9시간 회사 사람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는데 그 중 딱 한 시간, 나를 위해 쓸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점심시간에 꼭 점심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은행 다녀올 수도 있고, 그 시간에 운동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밥보다 디저트가 좋은 사람들은 예쁜 카페에 가서 여유롭게 티타임을 즐길수도 있고, 피곤한 사람은 점심을 패스하고 낮잠을 잘 수도 있다. 요즘 잠이 부족한 현대인들을 위해 휴식 시간을 이용해서 잠깐눈 붙일수 있도록 잠을 잘 수 있는 낮잠 카페도 많다.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책을 읽을 수도 있고 게임을 할 수도 있다.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바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유일하게 주어지는 한 시간의 여유, 나를 위해 똑똑하게 사용해야 한다. 우리는 쉬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by 디자이너 박시아
parksia@brancos.co.kr
브랜드 마케팅 스튜디오, 브랜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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