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화장품 디자이너였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화장품 디자인 업무 외에 우연히 웹디자인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내 적성에 너무 잘 맞아서 이직하게 되었다. 사실 이직을 하는 거 자체가 나에겐 큰 도전이었다. 하지만 더 큰 도전은 스타트업이라는 환경에 발을 들이는 것이었다. 벌써 웹디자이너라는 타이틀로 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돼가는데 스타트업을 다니면서 내가 느낀 점들을 정리해보았다. 스타트업 입사를 저울질 중인 디자이너들에게 소소한 도움이 되길.
"얼굴보면 체하실까봐 턱만 좀 공개할게요."
#1 수평적 조직 구조
스타트업의 제일 큰 강점이라고 생각하는 점이 수평적 조직 구조라고 생각한다. 구직 정보를 봐도 많은 스타트업기업들이 강점으로 '가족 같은 분위기'를 내세운다. 내가 전에 다녔던 회사들은 드라마 '미생' 같은 딱딱한 분위기였고 내가 의견을 제시하려면 그에 근거하는 리서치와 제안서가 있어야 했다. 복잡하게 컨펌을 받아야 하므로 시간도 오래 걸리고 내 의견이 실질적으로 받아들여지기가 힘들었다. 또한 회사 분위기 자체가 개인적인 느낌이 강했다.
반면 스타트업은 아무래도 회사 인원수가 적다 보니 서로 가깝게 지내기 때문에 사이가 다 좋고 상사를 대할 때에 조금 더 편한 느낌이 있다. 내가 회사를 보면서 느낀 점, 문제점들을 쉽게 얘기할 수 있고 그 의견들이 회사 조직문화나 실무에서 직접적으로 반영되는 부분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인원수가 적다보니 내가 낸 아이디어가 실무에 적용될 때가 많기 때문에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하고 자율적인 분위기가 강한 대신 그에 따른 책임감도 막중하다.
#2 디자인 업무 외에 다양한 직무 활동
스타트업 기업이 아니여도 다른 기업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내 업무 외에 다양한 업무를 맡을 때가 있다. 전에 기업을 예를 들자면 화장품 디자인 외에도 웹디자이너가 급하게 일을 그만두게 되어서 화장품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일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스타트업에선 디자인 영역을 넘어서 기획일 까지 하게 될 때도 있다. 흔히 웹디자이너가 웹기획자로 빠지는 경우도 많다고 해서 기획 쪽도 경험해보고 싶었는데. 입사하고 얼마 후에 웹 기획을 맡게 돼서 혼자서 기획을 다 하고 웹디자인업무를 동시에 진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성과가 나쁘지 않게 나왔고 멤버들의 평가도 썩 나쁘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카드뉴스 기획을 할 때도 있고 기획을 할때 기획자 대신 레퍼런스를 직접 찾기도 하며, 마케팅팀 아이디어 회의에도 매주 참여한다. 다양한 직무활동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지만 가끔은 디자이너서써 더 전문성을 높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는 디자이너로 전문성을 높이고 싶고 '디자인만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스타트업과 맞지 않을 거 같다. 다양한 직무 활동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스타트업을 추천한다.
#3 사수의 부재
스타트업은 원래 구성원이 많지 않다. 팀을 짜서 움직인다 해도 그 팀에 구성원은 대개 서너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혼자 일을 하게 될 때가 많기 때문에 사수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사수에게 배우는 간접적인 경험보다는 혼자서 직접 부딪혀가며 직접적인 경험으로 인한 성장을 한다.
입사 첫날, 특별한 인수인계도 없는 상태에서 첫날 처음 해보는 카드뉴스 디자인을 하게 되었는데 '디자인 얼마나 걸릴까요?'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직속 사수가 있었다면 자문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얼버무렸던 기억이 있다. 스타트업은 사수가 있더라도 업무가 분할되어 각자 클라이언트가 다르고 바쁘게 돌아가기 때문에 사수의 멘토링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업무가 많고 혼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비로소 좋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성취감도 크고 노력한 만큼 성장한다.
#4 조금 더 자유로운 회사생활
다른 스타트업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 회사는 연월차 사용이 자유롭다. 월차, 반차, 휴가를 사용할 때마다 신청서를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따로 결제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사유를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월차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옷차림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여서 굳이 오피스룩을 입지 않아도 되고, 청바지를 입을 수도 있다. 회사 구성원들 평균 나이가 30.1세로, 일반 회사들과 다르게 사무실에 노래를 들으며 업무를 해서, 적막함이 없고 사무실 분위기가 항상 활기차고 열정이 넘친다.
보통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입사한다 하면 제일 크게 하는 걱정이 불확실성일 것이다. 스타트업은 말 그대로 막 시작한 회사이니까 재정 문제가 안정적이지 않을 수 있고, 체계를 만들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직원들의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처음에 브랜코스에 입사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가족, 친구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했다. 내가 운이 좋은 걸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 월급이 밀린 적도 없고,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나도 많이 성장했고, 성장의 기회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내 경험상 스타트업은 큰 회사와 업무수행 방식부터 회사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모든 게 다른 거 같다. '뭐가 더 좋다'라고 정의를 내리기엔 두 회사가 가진 장단점이 극명히 갈리기에 정답도 없다. 일단 내가 어떤 성향인지 파악 후 스타트업에 관한 글들을 많이 읽어보고 큰 회사로 갈지 아니면 스타트업에 도전을 해볼지 신중하게 고민하길 바란다. 누구에게나 조언을 구할 수는 있지만, 결국 판단과 선택은 스스로 해야 하니까.
by 디자이너 박시아
parksia@brancos.co.kr
브랜드 마케팅 스튜디오, 브랜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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