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있는 일이다. 내가 콘텐츠를 만드는지, 끊임없이 뱉어내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다. 눈을 가린 채 달리는 경주마 같다. 부랴부랴 콘텐츠를 쏟아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마케터한테 글쓰기는 기본이야. 아니 필수야. 글은 생각을 옮기는 수단이고 모든 마케팅 활동은 여기서 부터 출발해. 기획부터 완료까지, 어떤 기획서든 제안서든 콘텐츠든 뭐든 글쓰기가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생략)"
처음 마케팅에 발을 디뎠을 때 깨달아야 했다. 나는 생각보다 글쓰기 재주가 없다는 사실을. 100%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았음을. 무언가를 만들어 세상에 선보이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아니, 즐거워야 한다. 창작의 영역에서 즐거움, 만족이 빠지면 나를 움직이는 동기는 월급 밖에 없다. 바라는 바가 아니다. 본격적으로 몸담기 전, 나는 마케팅, 그중에서 콘텐츠 마케팅 영역은 내게 꽤 잘 맞는 일이라 생각했다. 창작물을 만들어 내는 일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또 다양한 분야를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지금도 콘텐츠 마케팅은 여전히 내게 즐거운 일이다. 몇 가지 힘든 점만 빼면 분명 매력 있는 직업이다.
Part.1 _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
#1. 집착
콘텐츠 마케터는 고객사를 완벽히 알고 있어야 한다. 이 기업의 특징과 강점, 타겟은 누구고 어떤 스토리를 가졌는지 자연스럽게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가능하면 '고객사 직원들이 점심 메뉴로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까지 알고 싶다. 꺼낼 수 있는 카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대행사의 직원이지만 고객사의 직원이 된 것처럼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생생한 고객사의 정보와 자료가 필요하다. 한 일류 셰프는 훌륭한 음식은 70%가 신선한 재료, 30%가 요리사의 실력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콘텐츠도 비슷하다. 신선한 재료가 있다면 신선한 콘텐츠가 나온다. 고객사 담당자와의 스킨십은 그런 점에서 무척 중요하다.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록 내부 자료는 받기 수월해진다.
간혹 담당자가 없거나 업무가 가중된 담당자를 만나는 경우가 있다. 잡채를 만들고 싶은데 당근하고 양파 밖에 없다. 당면은 다음 주에 받아 볼 수 있다고 한다. 혹은 내부 사정으로 인해 당면 제공은 힘들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당면이 아니라 소면을 보내준 경우도 있다. 결국 당근 양파 볶음밥을 만들었다.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 과정이야 어쨌든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평범한 콘텐츠로 낮은 성과를 얻는 날엔 자책 한다. 당근, 양파 볶음밥 보단, 라면에 당근과 양파를 넣는 게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하고.
#2. 시간
또 다시 등장한 선배 say,
"한 번 익숙해지면 콘텐츠는 하루에 5개도 만들 수 있어!"
나는 그때 선배가 허언증이 있는지, 먼저 의심 했어야 했다. 첫 콘텐츠 쓴 날을 잊지 못한다. 나는 생각보다 글을 상당히 못 썼다. 아니, 정규 교육과정을 제대로 마친 사람이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런 엉망인 글을 6시간 동안 붙잡고 있었다. 물론 정상 발행되지 못했다. 시간은 시간을 해결해주지 못했다. 물론 콘텐츠 제작의 시간은 많이 단축되었다. 그럼에도 하루에 5개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하나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선 물리적으로 시간을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콘텐츠를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필요하다면 취재도 진행한다. 그리고 수집한 정보의 팩트체크도 해야 한다. 글의 구성과 방향에 대한 수정 작업도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글을 다듬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하루에 제작할 수 있는 콘텐츠의 수는 5개는커녕 2개도 빠듯하다. 고객사마다 정해진 스케줄에 맞게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선 경주마처럼 아침 출근과 동시에 달려야 한다. 가끔 준비운동이나 신발을 점검하고 싶을 때가 있다.
#3. 동상이몽
고객사와의 계약 전 제안 단계에서 콘텐츠 마케팅의 효용성에 관해 설명한다. 단발성 광고가 아닌 꾸준히 쌓아 올린 콘텐츠의 힘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고객사도 수용한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콘텐츠를 쌓는다. 고객사는 만족한다. 언제나 이런 것은 아니다. 일부 고객사는 답답함을 느낀다. 상위노출, 키워드 광고, 블로그 구매 등에 익숙한 고객사일수록 그 경향이 크다.
고객사의 눈엔 단순히 콘텐츠 마케팅이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글을 몇 줄 써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고객사 입장에서는 큰돈을 투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장 구체적인 성과, 즉 '매출 증가'가 피부로 느껴지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기분이 든다. 콘텐츠 마케팅은 당장 매출 증대에 큰 힘을 내기는 어렵다. 쌓이는 콘텐츠를 고객이 경험하고 해당 브랜드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인지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부에서 해당 브랜드, 혹은 기업을 어떻게 알릴 것인가.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대상은 누구인가와 같은 고민의 결과물을 고객사가 '글 몇 줄 적는 게 뭐가 그리 힘듭니까?'로 요약할 때 기분은 참담하다.
Part.2 _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아직도 고민한다. 콘텐츠 마케팅이 천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즐겁지 않을 때도 많다. 흡연량도 늘었다. 친구들과의 약속 시간도 어기는 일이 많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일이 즐겁다.
#4. 진심의 짜릿함
콘텐츠는 내가 아닌 고객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창작물이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할만한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어 냈을 때 기분은 내 것이다. 좋은 콘텐츠는 좋은 전략과 좋은 주제를 가지고 좋은 결과를 얻어내는 콘텐츠를 말한다. 스스로 만족하는 콘텐츠가 세상에서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을 때 나는 걸음걸이가 달라진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짜릿하다. 진심은 고객사에도 전해진다. '콘텐츠가 잘 보고 있습니다.' '고객들도 좋아하십니다.'라는 말을 전해 들을 때면 역시 이 일을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5, 콘텐츠 마케팅, 대단한 일도 아니다
선배는 말했다.
"콘텐츠 마케팅은 사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야."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찮은 일이라는 뜻이 아니다. 콘텐츠 마케팅은 내가 고객사의 눈과 입과 손이 되는 과정이다. 고객사에 대한 관심과 고민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생각을 할 수 있고 글을 쓸 수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리고 적절한 성능에 컴퓨터만 있으면 준비물도 끝난다. 하지만 나는 역설적으로 이 일은 나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업으로 삼기 위해선 더 많은 고민, 더 많은 정성을 들여야 한다. 일을 맡기는 고객사가 매달 나에게 월급을 준다.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 자영업자에겐 피 같은 돈이다. 가끔 자문한다. '나는 돈값을 하고 있는가?'
콘텐츠를 만드는 동안은 내를 내려놓고 고객사 페르소나를 꺼내 들어야 한다. 부담도 있다. 내가 만든 콘텐츠에 문제라도 생기면 내가 아닌 고객사가 피해를 본다. 콘텐츠 마케팅 활동에서 가장 기본은 글쓰기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책임감과 정성이다. 고객사의 콘텐츠 마케팅을 담당하면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럼에도, 이 일이 아직 즐거운 이유는 창작의 즐거움과 성과의 짜릿함의 순간을 계속 맛보고 싶은 열망에 있지 않을까.
by 마케터 정보람찬
boramchan@brancos.co.kr
브랜드 마케팅 스튜디오, 브랜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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